동보민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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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귀
 운영자  2003/04/18 12:01:59
 db21@dbhealth.co.kr  http://
 danggi.jpg  767

옛날 어느 마을 근처에 매우 놓고 험한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에는 수 많은 약초와 매우 거친 맹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혈기 왕성한 동네청년들이 모여서 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번 누구의 담력이 강한가 내기 한번 해보자. 이 산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3년뒤에 돌아노는 사람이 담력이 강한 사람으로 결정하자"

하지만 그 산은 너무나 험하고 위험한 산이라 서로의 눈치만 살필뿐 어느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어는 청년이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 청년은 워낙 온순한 성격인데다가 또한 신혼이라 동네사람들과 가족들이 말렸지만, 그의 결심을 꺽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청년은 산을 향해 떠났고 3년이 흘렀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3년이라는 세월을 눈물로서 보낸 부인은 부인병이 걸리고 월경도 중단이 되었습니다.

반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아들이 돌아오지 ㅇ낳자 어머니는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산에서 무슨 변을 당했을 것이다. 너는 젊고 수많은 날들이 남아 있으니 재가하도록 하여라"

물론 시어머니의 말에 며느리는 거절을 하였습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며느기가 건강을 회복하자 어머니는 다시 재가하기를 간절히 권하였고, 하는 수없이 며느리는 재가를 하였습니다.

재가를 하고 나서 얼마후 그의 남편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집에 다시 돌아온 남편은 집을 살펴보았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만 계실뿐 부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묻기를
"저의 부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너가 돌아오지 않아 죽은 줄로 알고 내가 재가를 시켰다"

눈물로 나날을 지새던 남편은 며칠 뒤 자신이 돌아왔음을 아리는 서신을 친구통해 부인에게 보냈다.

비록 편지를 받았지만 이제ㅈ는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눈물만 흘리 뿐이었습니다.

얼마 뒤 재가한 부인은 전과 같이 별이 재발하여 온갖 치료를 다 해보았으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전 남편은 자신이 산에 있을때 캐온 약초를 친구를 통해 부인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재가해서 만난 남편은 워낙 착한 사람이고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라 모든 이야기를 듣고 부인을 전 남편에게 보내주었으며 그 약초를 먹은 부인은 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약초는 "남편이 당연히 돌아온다"는 의미에서 '당연하다'는 뜻의 '당(當)'과 '돌아오다'의 뜻의 '귀(歸)'를 합해'당귀(當歸)'라고 이름을 짓게 된 것입니다.

그후에도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면 부인들이 무사히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당귀라는 약초를 품속에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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